비가 계속 내리는 요즘이다.
도시에서는 비가 오면 별 생각이 없었다. 운전도 안 했기에 교통 생각도 안 하고 그저 빗소리 듣는 게 좋은 정도였다. 시골에 온 지금은 비가 오면 식물 생각이 가장 먼저 난다.
‘식물들은 참 좋겠다. 비 오고 나면 쑥쑥 자라겠네.’
정말 비가 오고 나면 식물들은 쑥쑥 자라 있다. 키우는 작물뿐만 아니라 옆에 자라는 풀 또한 금세 무성해진다. 동네 어르신은 “사람이 주는 물은 비가 오는 것과 비교가 안된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맑은 날만 계속되는 것보다 요즘처럼 비가 적절하게 내리는 것이 좋다”라고 하셨다. 적당히만.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비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집 뒤 텃밭을 구경했다. 가장 큰 행복을 얻는 장소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잘 자라 주는 작물들이 신기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비가 오고 햇빛이 비추고 또 비가 오고 해서 인지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키우는 작물과 뽑아야 할 풀이 구분이 안될 정도다. 텃밭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옥수수다. 보통은 농사짓는 땅 둘레에 빙 둘러서 심는다고 하는데 초보인 나는 둔턱에 가지런히 심었다. 잎이 커짐에 따라다니기 불편한 게 사실이다. 퇴비도 안 하고 농약도 안 하고 제대로 된 비료도 주지 않아서 인지 옥수수 줄기가 얇다. 얇고 작고 뭔가 부실한데 고맙게도 열매는 맺혔다.
키가 작은데 깡치가 드러나고 씨가 매달려있었다. 알고 보니 성장이 멈춘 것이었다. 이장님은 “어린놈이 장가간 거다”라고 하셨다. 키는 아직 작은데 옥수수가 옆에 매달려있는 게 신기했다.
같은 날, 같은 환경의 땅에 심었는데 키가 제 각각이다. 굵기도 저마다 다르다. 농사를 오래 지신 분들의 옥수수를 보면 키도 크고 잎 색도 진하다. 그리고 열매가 아직 맺히지 않았다. 더 자랄 기세로 멋지게 뽐내고 있는데 작은 텃밭에 있는 나의 옥수수들은 벌써 결실을 보고 있다.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 속은 어떨지, 맛은 어떨지 기대 된다.
한 켠에는 고구마를 심었다. 5월 말에서 6월 초에 많이 심는데 일부는 6월 중순쯤으로 늦게 심었다. 제 때에 심은 고구마가 잘 못 심은 거 같기도 하고 더 먹고 싶기도 해서 추가로 심었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을지 궁금하다. 집 뒤 텃밭은 돌이 많다. 그리고 땅을 제대로 갈지 않아서 고구마가 제대로 생길지 모르겠다. 고구마 줄기를 심고 나면 몇 일간은 잎들이 축 쳐져있다. 그러다가 슬슬 살아나는 고구마 잎. 고개를 들고 있는 걸 보면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집 앞에서 고추농사를 하시는 어르신께서 고추 모종을 몇 개 주셨다. 주시면서 “이건 청양, 이건 아삭이, 이건 꽈리” 설명을 해주셨지만 텃밭에 심으려고 하니 기억이 안 나고 섞여 버렸다. 다행히 고추가 매달린 걸 보고 어느 정도는 구분하게 되었다.
누가 보아도 꽈리고추다. 고추가 쭈글쭈글한 거 보니까 꽈리고추다. 그런데 왠지 좀 큰 거 같다. 따주어야 하는지 어떤지 몰라서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상황이다.
섞였지만 ‘고추가 자라면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도저히 모르겠다. 가지 사이에 껴서 둥그렇게 자라는 줄 알았는데 다른 것도 이렇게 생겼다. 고추는 농약을 많이 해야 하는 작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 고추를 먹을 때 앞을 조금 떼서 먹었다. 하지만 텃밭에 심은 몇 개 안 되는 작물에 농약을 치기도 그렇고 중요한 건 내가 먹을 건데 그냥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어서 ‘자유롭게’ 키웠다. 그랬더니 이렇게 열매가 맺혔다. 피망같이 생겼다. 피망 고추인가 싶은데 그런 종류가 있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바이러스인가도 싶다. 나중에 먹을 때쯤 되면 알지 않을까 싶다.
작은 텃밭에 여러 가지 심었다. 도시에 있을 때 베란다에서 키워 본 바질을 심었다. 집에서 어느 정도 자란 뒤에 텃밭으로 옮겨 심었었다. 5월에 옮겨 심었는데 성장이 멈춘 듯 안 크더니 6월 되니 잎도 커지고 키도 커졌다. 검색해보니 5월 이전에는 성장세가 더디다가 6월에 커진다고 하였다. 정상이었다. 바질은 토마토 사이사이에 심었다. 그게 병해충에 좋다는 글을 본 순간 바로 심어버렸다. 잘 자라면 바질 페스토도 해 먹고 바질 치아바타도 만들어 먹고 샐러드에도 넣고 할 생각이다.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
일반 토마토도 모종 한 개 사서 심었다. 가격은 1,500원이었다. 모종가격 치고는 비싼편이었다. 방울토마토가 아닌 일반적인 토마토다. 처음 성장세가 좋아서 쑥쑥 자라더니 열매가 맺히니 조금 더디다. ‘퇴비를 안 해서 일까. 땅에 돌이 있어서 뿌리가 잘 못 뻗어서 일까’ 추측해 보지만 열매가 맺히면서 영양분을 집중하느라 키가 더디게 크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럴 때 비료를 주면 잘 큰다는데 줄 비료가 없다. 맺힌 열매를 보면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것이 신기하다.
길쭉하게 생긴 대추 방울토마토도 심었다. 방울토마토는 장마에 약하다고 하는데 비가 적당히만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내리쬐면 초록색 열매들이 빨갛게 익을 것 같다.
길쭉한 대추 방울토마토와는 생김새가 확실히 다르다. 둥글둥글. 방울토마토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분들은 아래에 맺히는 열매는 떼어준다고 한다. 그리고 맺히는 꽃대도 선별해서 키운다고 한다. 아래에 열매를 맺으면 그곳에 영양분을 집중하느라 키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 뒤 텃밭에서는 조금은 ‘자연스럽게’ 키우고 있다. 사실 토마토 종류들 모두 봄에 냉해를 입었었다. 잎 색이 변하더니 성장하지 않았다. 멈춘 듯 키가 크지 않은 것이다. 3월 갑작스럽게 기온이 0도 근처까지 떨어지고 난 뒤로 성장이 멈춘 것이었다. 그런데 감사하게 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온이 올라가던 때에 쑥쑥 자라주었다. 냉해를 입어서 키가 너무 작은 상태일 때 관리를 못해주었더니 곁가지가 마구 자라고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상태이지만 커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이장님은 결코 크지 않은 조그만 텃밭을 보시며 “미국 농장 같네” 라고 하셨다. 다양해서 였을까. 자유로워서 였을까.
당연히 자라지 않을 것 같았던 당근도 이렇게 자라주고 있다. 땅에 바로 직파해야 하지만 준비가 덜 된 땅이어서 (하수관공사를 했었다) 집 안에서 키우고 옮겨심었다. 그래도 자라주고 있다. 다만 위로 뚫고 올라오는 것 같다. 생각에는 바닥에 뭐가 있어서 들려서 그런가 싶은데... 알 길이 없다. 위로 뚫고 나와서 흙을 덮어주었는데 또 뚫고 나왔다. 계속 덮어주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빼꼼 얼굴을 내민 것 같아서 귀엽다. 초록색 가득한 텃밭에서 주황색이 눈에 띈다.
커다란 늙은 호박잎이다. 앞 집에 사시는 분께서 심어보라고 주신 모종인데 잎이 무지 크고 풍성하게 자란다. 관리해주는 법을 잘 몰라서 줄기 방향만 잡아주고 키우고 있는데 열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무성한 잎 사이에 가려져서 못 찾는 걸지도 모르겠다. 늙은 호박은 열매가 맺히고 자라면 뭘 해 먹어야 할까.
단호박 모종은 사서 심었다. 이것 역시 늙은 호박과 비슷하다. 잎이 크고 쭉쭉 뻗어나간다. 꽃이 엄청 이쁜데 비가 와서 오그라들고 아쉽다. 단호박이라고 샀는데 시중에서 파는 단호박과는 다르게 열매가 맺히는 것 같다. 왠지 애호박이 동그랗게 자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맑은 날 텃밭을 보면 붉은 당근이 얼굴을 내밀고 노란 호박꽃이 활짝 웃고 있다.
가지도 성장이 멈춘 듯 자라지를 않았었다. 그래서 아랫부분이 관리가 안돼서 풀이 마구 자랐다. 그러다가 점차 키가 크더니 꽃 까지 맺혔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아직까지는. 수정이 안 되는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열매가 맺히지는 않고 꽃이 시들어버린다. 왜 그럴까. 비 오는 날 고개 숙인 가지 꽃이 안쓰럽게 보인다.
심을 계획에 없던 당귀를 심었다. 앞 집에 루꼴라 씨앗을 드렸더니 고맙다고 하시면 당귀를 주셨다. 심을 계획에는 없었지만 당귀를 참 좋아한다. 고기쌈을 먹을 때 넣어 먹으면 향과 맛이 한 껏 올라가기 때문이다. 두 개만 심었지만 잎이 풍성해지면 제법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키는 작다.
옮겨 심은지 얼마 되지 않은 모둠 상추와 부추다. 부추는 정말 잘 안 자라는 것 같다. 티브이에서 보면 길쭉길쭉 잘도 자라는 것 같은데 우리 집 부추는 흐물흐물하게 늘어져있다. 다른 상추 모종들은 자리를 잘 잡은 모양이다. 제법 잎들이 나고 있다. 자라는 속도에 맞추어서 상추를 뜯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고기를 자주 먹어야 할 것 같다.
로켓샐러드라고 하는 루꼴라도 심었다. 그런데 노지에서 햇빛을 강하게 받고 자라서 그런지 잎이 뻣뻣하고 쓰다. 찾아보니 어릴 때 따서 먹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잘 안 뜯어먹게 되니 거침없이 자라더니 꽃도 자주 폈다. 꽃대를 꺾어주고 꺾어주어도 꽃이 계속 폈다. 그래도 꿋꿋하게 자라 주는 루꼴라. 비가 그치면 제대로 관리를 해주어야겠다.
대파도 심었다. 시장에서 구매한 대파의 뿌리를 잘라서 심었다. 심기만 하면 엄청 잘 자랄 줄 알았는데 농알못이었다. 성장이 더디다. 잘라먹고 뒤돌아서면 자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작물마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데 조급했던 것 같다. 죽지만 말고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작물은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백향과이다. 패션후르츠라고 하는 열대과일로 시험재배 중이다. 모종을 구입한 뒤 일부는 노지에 일부는 미니하우스에 일부는 화분에 키우며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니하우스에서 비닐멀칭 한 작물이 결과가 제일 좋다. 열매도 잘 맺히고 키도 잘 크고 있다. 백향과 꽃은 하루만 잠깐 피고 오므라든다. 그때 벌이 수정해주지 않는다면 속이 빈 열매가 되거나 그냥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공수정을 해주어야 한다. 면봉이나 손으로 해주면 간단히 해결된다. 아직은 몇 개 되지 않아서 간단하지만 제대로 농사를 짓게 되면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지 공부해봐야겠다.
백향과만을 위한 작은 미니하우스다. 사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3번의 옮겨심기가 있었기에 자리를 잡고 성장하는데 오래 걸려서 키가 작은 편이다. 처음부터 화분에서 자리를 잡고 키운 백향과는 키가 크고 잎도 큼지막했다. 뒤쳐지는가 싶던 하우스 백향과. 그럼에도 하우스의 온기는 따뜻한가 보다. 열매도 잘 맺고 성장세도 빠르다. 7월 한 달 동안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
농알못이지만 잘 자라주고 있는 작물들이 고맙다. 제대로 땅을 갈지 않아 돌은 많고 퇴비도 안 해서 영양분도 부족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먹고 자랄 영양분이 있나 보다. 땅의 신비로움인지 작물의 놀라운 생명력인지. 이러한 공간이 있어서 행복하다.
비 오는 날의 텃밭은 움츠린 개구리 같다. 이 비가 그치면 점프하듯 쑥쑥 자랄 것이다. 고마운 비. 고마운 땅. 고마운 작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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